문화

동물원의 역사: 군주의 권력 과시와 대중 오락 장소에서 동물 복지의 공간까지

Zigzag 2022. 10. 2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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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로얄 머나저리(Royal Menagerie, 런던). 이미지: Heritage Images/Hulton Archives via Getty Images

오늘날 동물원은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배움과 추억의 장소이다. 그리고 동시에 적지 않은 이들에게는 동물 학대의 현장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최초를 탐험하는 역사가 그렇듯 최초의 동물원 역시 누가 최초의 동물원을 지었는지, 언제 지어졌는지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물원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다. 길가메시의 서사에 등장하는 홍수 설화 속의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의 방주 그리고 그와 매우 유사한 성경의 노아의 방주는 거대한 재난에서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종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던 일종의 동물원이었다.

보르네오 동굴에 있는 소처럼 생긴 동물의 이 그림은 적어도 4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암석 예술이다. 사진: Luc-Henri Fage

인간의 동물에 대한 매료는 인간 자신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동굴 벽화들 중 일부는 최대 4만 년 전의 것으로, 사람보다 동물의 이미지가 더 많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그들이 원할 때마다 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동물을 붙잡기 시작했다.

동물원, 권력자들의 과시 공간

처음 알려진 이국적인 동물 컬렉션은 왕족에 의해 소유되었고,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 도시 네켄의 고고학적 발굴 결과 기원전 3500년 경에 이집트가 원산지가 아닌 포획된 하마, 개코원숭이, 코끼리의 유해가 있는 건물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동물들에게 삶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아마도 짧은 수명을 가졌을 것이고, 그들의 유해는 심각한 부상의 증거를 보여준다.

기원전 2500년경 사망한 이집트 파라오 사후레(Sahure)의 무덤에는 칼라와 목줄을 매고 있는 시리아 곰의 사실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그 당시 동물은 통치자의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파라오는 자신의 야생 동물을 포획할 것을 요구했다. 시리아 곰들은 무역 원정에서 데려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곰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히에라콘폴리스의 고대 이집트 묘지에서 발견된 개코원숭이의 유적. 사진: Renee Friedman, Courtesy of Hierakonpolis Expedition

최초의 동물 공개 전시회는 기원전 1480년경에 이집트의 여왕 하셉수트(Hatshepsut)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 그 동물원은 여왕이 오늘날의 에리트레아(Eritrea)였을 수도 있는 푼트(Punt)로 알려진 먼 땅으로 보낸 원정에서 데려온 동물들로 시작됐다고 여겨진다. 그녀가 왜 동물원을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은 그녀의 부와 통치권을 과시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위험하고 이국적인 동물들을 가둬두는 것은 때때로 통치자들이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방법이 되어왔다.

초기 동물원은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중국 주 문왕(周 文王)은 기원전 1060년경에 영유(靈囿)라 불리는 정원을 지었으며 그 안에 사슴, 새 그리고 많은 물고기들을 포함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신성 로마 제국(Holy Roman Empire)의 도래와 함께 이국적인 동물들이 외교 사절의 선물을 통해 황실 컬렉션에 들어왔다. 8세기에 샤를마뉴(Charlemagne) 황제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군주들로부터 코끼리와 같은 이국적인 동물의 형태로 선물을 받았다.

군주의 컬렉션과 외교수단으로써의 동물원

신성 로마 제국을 제외하고 정복자 윌리엄은 자신의 우드스탁 장원에 작은 동물 컬렉션을 구축했다. 1100년대에 그의 아들 헨리 1세(Henry I)는 낙타, 표범, 사자, 스라소니, 올빼미, 심지어 고슴도치까지 사육하면서 왕실 영지의 동물원을 유지하고 확장했다. 13세기에는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 황제가 사자 3마리를 선물했다. 존(John) 왕은 사자를 너무 자랑스러워해서 건물 중 하나를 '사자탑'이라고 명명했으며 지금도 그들은 잉글랜드의 정체성과 국가 상징의 일부가 되었다. 노르웨이 통치자의 백곰, 프랑스 통치자의 코끼리 등 외교 선물이 들어와 왕실의 동물원은 확대되었다. 이 컬렉션은 결국 1235년에 런던 타워로 옮겨졌는데, 타워 동물 컬렉션은 600년 동안 그 위치에 머물렀다.

이 동물원은 실제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볼 때 끔찍할 정도로 잔인한 전시물이었다. 오늘 타워를 방문하면 몇 개의 새장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금속 막대가 있는 맨 돌로 만든 새장이다. 그곳에서 동물들이 잘 살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1255년 프랑스 왕이 코끼리를 영국에 보냈다. 코끼리는 자신 집이 있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죽었다. 컬렉션에는 한 때 긴 사슬로 템스 강에서 수영할 수 있었던 북극곰이 포함되었다. 한때 일반 방문객도 이 동물원에 입장이 허용되었는데 그들은 입장료로 약간의 비용을 돈으로 지불하기도 했지만, 사자에게 먹일 길 잃은 개나 고양이를 입장료 대신 내기도 했다.

루이 14세가 만든 베르사유 궁전의 야생동물원 혹은 머나제리(ménagerie). 사진: Wikipedia

프랑스는 17세기에 무대 싸움을 위해 동물원을 시작했다. 동물들은 운동을 위한 작은 마당이 있는 원형 극장 아래의 작은 우리에 갇힌 인클로저에 배치되었다. 1600년대 후반, 베르사유 동물원은 유원지로 지어졌다. 이국적인 동물들은 방문객들을 위한 파빌리온을 마주하는 원형으로 배열된 인클로저에 보관되었으며 이 틀은 다른 유럽 통치자들에 의해 모방되었다.

탐험가들이 세계를 여행할 때 특히 열대 지방에서 이국적인 표본을 수집한 것은 15세기 탐험 시대가 되어서였다. 그 결과 서구의 수도들에 동물원들이 세워지고 군주들은 동물원의 규모와 웅장함으로 자신들의 지위와 힘을 다시 한번 과시하게 되었다.

아메리카에서 1500년대 후반에 몬테주마 2세(Montezuma II)는 지금은 멕시코시티로 알려져 있는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에서 동물원을 운영했다. 그것은 수많은 새, 육식성 포유류, 뱀을 포함했다. 이 동물원은 너무 커서 300명의 사람들이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 고용되었다. 황제는 개인적으로 유럽에서 온 첫 번째 방문객들에게 동물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이끄는 스페인 병사들은 1591년 테노치틀란 정복 당시 동물원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을 얼마나 존경했는지에 대해 썼다.

계몽 시대와 대중 시대의 동물원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대는 동물원에 새로운 관점과 목적을 가져왔다. 이것이 "동물원"(zoo)이라는 용어가 시작된 때로 이는 더 긴 과학 용어인 "동물 정원"(zoological garden)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동물원은 18세기 중후반에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주로 과학적 연구를 위해 베르사유 야생 동물원 혹은 머나제리(menagerie)에서 파리 식물원(Jardin des Plantes)의 동물원으로 동물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1752년 빈에 세워진 쇤브룬 동물원(Schönbrunn Zoo)이다. 이 동물원은 동물들을 자연주의적인 환경에 가두고 여러 종을 하나의 울타리에 함께 두는 것과 같은 많은 디자인 혁신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1828년 런던 동물원 조감도. 이미지: Wikipedia

과학적 목적으로만 만들어진 최초의 동물원은 1828년 런던 동물학회가 설립한 런던 동물원(London Zoo)이었다. 1831년에 더블린 동물원(Dublin Zoo)은 살아있는 동물과 죽은 동물의 의학 연구를 위해 만들어졌다.

계몽과 함께 대중들이 점차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면서 군주의 특권으로 알려진 동물원 역시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16세기에는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시대에 영국 왕실 동물원이 일반에 공개되었다. 18세기에는 프란시스 1세(Francis I) 황제가 개인 동물원도 일반에 공개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는 동물원이 교양을 위한 오락으로 재탄생되었다. 1860년에 센트럴 파크 동물원(Central Park Zoo)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필라델피아 동물원(Philadelphia Zoo)은 1874년에 그 뒤를 이었는데 이 동물원들은 대중들에 대한 공개와 오락의 목적으로 설계되었다.

인간의 안전과 동물의 복지

동물들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면서 발생한 문제는 한편으로는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들이 이 동물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은 없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820년대 초, 예민해진 동물들이 방문객들에게 수많은 공격을 가하면서 웰링턴 공작(Duke of Wellington)과 같은 사람들은 동물원 폐쇄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안전장치 마련이 요구되었다. 베르사유식의 철창은 1907년 독일 스텔링겐에 있는 카를 하겐벡(Carl Hagenbeck)에 의해 변경되었다. 그는 창살 대신 해자를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었고, 울타리를 동물들의 자연 서식지에 더 가깝게 맞추었다.

그러나 해자는 특히 극도로 겁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은 동물들이 지진과 같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자를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때때로 불안정한 울타리 수단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 가지 가능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전기 격납 울타리를 사용해 우리로 둘러싸인 인클로저 시스템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 보호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였고,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연구 부서를 포함한 시설이 설치되었고 보전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교육 직원이 고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50년 동안 기관이 보전 및 교육 기관으로 발전함에 따라 동물원 디자인의 조경 몰입형 모델이 유명해졌다.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에서 동물을 전시하고 방문객이 그 서식지에서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장면을 설정함으로써 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방문객에게 보존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기를 의도한다.

2020년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수족관에서 해양 포유류 조련사가 물개 이빨을 닦고 있습니다. 사진: Joseph Prezioso/AFP via Getty Images

최근에는 동물 보호와 보존을 넘어 복지에 대한 이해가 확대되면서 동물원 인증제가 강화되고 있다. 인증은 모범 사례를 유지하고 개척하기 위한 메커니즘이다. 미국의 경우 동물원과 수족관 협회(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ums, AZA)의 인증을 받는 것은 북미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최고 수준의 전문적인 인정이다. 미국 농무부가 허가한 약 2,800개의 동물 전시업체 중 250개 미만이 AZA 인증을 받았다.

그 인증을 얻기 위해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그것의 임무, 건전한 사업 운영 및 교육, 보존 및 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활동과 일치함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인증의 핵심은 인간이 돌보는 동물의 삶의 질을 증명하는 것이다. 동물 복지를 최적화하려면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지식 기반이 필요하다. 많은 동물원에는 수백 종의 동물이 있으며 각 종은 생태계에서 고유한 틈새를 차지하기 때문에 존재하므로 한 종의 이상적인 복지를 제공하는 조건이 다른 종의 조건과 동일하지 않을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동물의 인지 능력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많은 과학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풍부하거나 빈곤한 환경이 동물의 뇌와 행동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동물원들은 공식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관리를 수용하게 되었다.

포획 동물은 일반적으로 야생 동물보다 오래 산다. 동물원은 야생에서 멸종되고 있는 점점 더 많은 종의 구명정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오늘날 동물원은 권력의 과시, 과학적 연구, 대중의 계몽과 유흥, 그리고 동물 보호를 넘어 그 보존과 동물들의 삶에 대한 이해와 복지 확대의 요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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