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신자유주의의 최후의 보루 이코노미스트:

Zigzag 2023. 4. 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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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발달로 인쇄매체 그리고 매체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글로벌 매체이다. 날카로운 논조와 팩트에 기반한 객관적 분석으로 명성을 유지해 온 이코노미스트이지만 경제 문제에서의 자유주의적 논조는 시대 역행적이다. 특히 규제완화와 민영화, 복지 등 공적 지출 삭감, 기업 등 부자에 대한 과세 완화가 투자와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면 대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를 지속적으로 설파해 온 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의 붕괴,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세계적 인플레 가중, 기후 위기 등으로 야기된 위기를 여전히 국가를 억누르고 시장을 강화하는 신자유주의로 극복할 수 있다는 모순적 논조를 설파하고 있다. 이 글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의 경제학 교수이자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 재무부 차관보 출신 J. Bradford DeLong의 Project Syndicate 4월 27일 자 기고 Neoliberalism’s Final Stronghold의 번역으로 1980년대 이래 40여 년 동안 헤게모니를 유지해 온 신자유주의 쇠퇴 속에서도 신자유주의를 여전히 고집하는 이코노미스트지의 문제점과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보루

J. Brad DeLong

세계가 40년간의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는 동안에도 이코노미스트는 마가렛 대처,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컨센서스의 정통성에 충실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미국 경제의 많은 문제들을 정부 탓으로 돌린다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사진: Jack Taylor/AFP via Getty Images

지난 10년은 신자유주의에 친절하지 않았다. 40년간의 규제 완화, 금융화, 세계화가 부유층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 가운데, 미국과 다른 서구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은 겉보기에 신자유주의 실험에서 벗어나 산업 정책(industrial policy)을 다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처주의, 레이건 경제학,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뒷받침했던 경제 패러다임은 적어도 한 곳, 즉 이코노미스트(Economist) 페이지에 살아 있고 잘 남아 있다.

* 역자 주: 워싱턴 컨센서스 혹은 워싱턴 합의는 경제학자 존 윌리엄슨(John Williamson)이 1989년 정식화한 경제용어이다. 이 용어는 원래 1980년대 라틴 아메리카 채무 위기 등 경제 위기에 대한 대처에서 정부가 경제 안정과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시행해야 할 경제 정책 조치의 패키지를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미국 재무부, 국제통화기금 (IMF), 세계은행(World Bank)과 같이 워싱턴에 기반을 둔 기구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주장되었기 때문에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린다. 윌리엄슨은 이 컨센서스의 "최대공약수로 다음의 10개 항목을 열거하였다: 1) 재정적자 시정, 2) 보조금 등 정부 지출 삭감 3) 세제 개혁 4) 금리 자유화 5) 경쟁력 있는 환율 6) 무역 자유화 7) 해외 자본의 국내 직접 투자 촉진 8) 공기업 민영화 9) 규제 완화 10) 소유권법 수립

미국의 "놀라운 경제 기록"을 기념하는 최근의 에세이가 좋은 예이다. 낙담한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나라의 "놀라운 성공 스토리"에 대해 행복해하라고 촉구한 후, 저자들은 은근한 건방을 배가시킨다."미국인들이 그들의 경제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할수록, 그들의 정치인들은 다음 30년을 더 망칠 가능성이 높다." 저자들은 '미국의 개방성'이 기업과 소비자에게 번영을 가져다줬다는 점을 인정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섰다"는 점도 주목한다. 그들은 보조금이 단기적으로는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낭비적이고 왜곡된 로비"를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의 부상과 기후 변화와 같은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무엇이 길고 성공적인 실행에 동력을 주었는지 기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느 때처럼 이코노미스트지는 진정한 신자의 모든 신성함과 확신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교리에 대한 경건함을 설파한다. 미국인들은 앉아서 입을 다물고 교리문답을 암송해야 한다. "시장은 주고 시장은 앗아간다. 시장의 이름에 축복이 있기를."  미국 경제의 현재 문제가 개입주의적이고 고압적인 정부가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의심하는 것은 배교이다. 그러나 경제 사학자로서 내 숨을 멎게 한 것은 미국의 전후 번영을 불의의 재물(Mammon of Unrighteousness, 일반적으로 자유방임 자본주의로 알려진)**에 대한 숭배 때문이라고 보는 에세이의 결론이었다.

** 역자 주: '불의의 재물', 혹은 '불의의 맘몬'(부와 물욕의 신)은 누가복음 16:9에 나오는 구절이다. 개역개정본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 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그리고 킹제임스 흠정본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불의한 맘몬으로 너희를 위해 친구들을 사귀라. 그리하면 너희가 숨이 멎을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존하는 거처로 받아들이리라."로 번역된다.

이 에세이는 미국이 직면한 세 가지 "새로운 도전"을 인용한다. 즉, 중국이 제기하는 안보 위협, 중국의 성장하는 경제적 영향력에 따른 세계적인 분업을 재편할 필요성, 그리고 기후 변화와의 싸움이 그것이다. 물론 세계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어도 3세대가 늦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후 문제는 "신선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의 신속한 행동 실패는 지구 온난화의 경제적 영향이 다음 두 세대에 걸쳐 세계의 예상되는 기술 배당금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을 소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도전은 "외부성"으로 간주된다. 시장 경제는 그것들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룰 수 없다. 결국 태평양에서 전쟁을 막거나 파키스탄이 지구 온난화를 늦추어 파괴적인 홍수를 피하도록 돕는 것은 금융 거래를 수반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 세계 엔지니어와 혁신가들의 공동 연구 개발 노력은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경제 번영의 주요 원동력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시장의 미적분학에는 보이지 않는다.

기후 변화와 같은 글로벌 도전의 규모와 시급성을 인식하고 그러고 나서 이코노미스트가 하는 것처럼 정부만이 효과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부인하는 것은 지적 배임과 유사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 자신도 영국과 식민지, 그리고 다른 나라들 사이의 무역과 운송을 규제하는 항해법(Navigation Acts)을 지지했다. 다른 옵션이 더 저렴하더라도 영국 선박을 통해 상품을 운송해야 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방위는 부유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라고 썼다. 바람직한 안보 정책을 "보호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에서 벗어난 것이다.

더욱이 이코노미스트가 바이든의 보호무역주의 주장을 비난한 것은 "이민 정치가 독이 됐다"는 모호한 관측을 동반하고 있다. 실제로 두 가지 옵션만 있다. 즉, 미국은 생산성이 높고 신속하게 통합되기 때문에 더 많은 이민자를 환영해야 하거나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동화 과정이 너무 느리다고 믿기 때문에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 저자들은 모호함을 유지함으로써, 아마도 이 문제의 양편에 있는 독자들이 이코노미스트가 그들의 견해를 공유한다고 확신하게 만들기를 희망하고 있다.

보조금이 "단기적으로는 빈곤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낭비적이고 왜곡된 로비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에세이의 관측도 마찬가지로 모호하다. 근본적인 주장은 외부성으로 인한 시장 실패는 나쁘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정부 정책의 잠재적 결과는 더 나쁘다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들의 가장 안전한 방법은 단순히 시장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주장은 미국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반영한다. 미국의 경제 전통은 개발국가(developmental state)의 필요성과 지대 추구(rent-seeking)***의 위험성을 인식한 알렉산더 해밀턴, 에이브러햄 링컨, 테디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역자 주: 지대 추구란 민간기업 등이 정부나 관료조직에 압력을 가해 법제도나 정치정책을 변경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편리하게 규제를 설정하거나 편리하게 규제를 완화시키는 등 초과 이윤(rent)을 얻기 위한 활동을 가리킨다. 이는 기존의 부 혹은 파이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는 방법을 찾으면서도 새로운 부를 생산하지는 않는 활동이며, 이로 인한 지출은 생산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자원 낭비로 간주된다.

확실히,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 지 70년이 되었고, 로널드 레이건의 당선으로 시작된 긴 신자유주의 시대 동안 미국의 국가 역량의 상당 부분이 공동화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의 대량 생산 경제에 비참할 정도로 부적합했던 자유방임 정책은 미래의 생명 공학 및 IT 기반 경제에 훨씬 더 적합하지 않다. 미국인들은 바이든의 산업 정책을 거부하기보다는 포용해야 한다. 마가렛 대처의 말을 인용하자면,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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