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과 음식

시저 샐러드의 역사: 이탈리아 요리사가 멕시코에서 만들어 미국과 세계 국경을 넘은 다문화 음식

Zigzag 2022. 8. 2. 00:19
반응형
■ 역자 주: 미국과 국경 인근의 멕시코 티후아나는 시저 샐러드가 탄생한 곳이다. 1920년대 당시 미국 금주령을 피해 멕시코로 술을 마시러 온 할리우드 스타들로 붐볐던 시저 카디니(Caesar Cardini)라 불리는 체사레(Cesare Cardini)가 식당에서 식재료가 떨어지자 로메인 상추와 파마산 치즈, 날달걀 노른자와 라임 소스 등을 섞어 만든 것이 시저 샐러드의 탄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통설과 달리 시저 샐러드는 체사레의 동생 알렉스(Alex),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폴 마지오라(Paul Maggiora), 혹은 체사레 식당의 젊은 요리사 리비오 산티니(Livio Santini)가 만들었다는 설들도 존재한다. 이 요리는 대중화되면서 라임주스가 레몬주스로 바뀌고, 일부에서는 크로스티니 대신 큐브 모양의 크루톤을 넣는 등 오리지널 요리법에서 약간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은 원래대로 유지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독자적 요리가 없었던 북중미에서 탄생한 이 요리는 체사레의 딸 로사 카디니(Rosa Cardini)의 설명을 믿는다면 1924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24일에 티후아나에 태어나 이제 거의 100주년이 다되어 간다. 이탈리아 요리사에 의해 멕시코에서 만들어져 미국인들이 즐겼던 이 음식은 이 대륙의 이민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음식이다. 이 글은 BBC 2029년 5월 22일 자 기사 The surprising truth about Caesar salad의 번역으로 시저 샐러드 탄생의 배경, 탄생 일화와 최초로 만든 이, 그 요리 재료와 요리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저 샐러드(Caesar salad)의 놀라운 진실

L Sasha Gora

한때 '50년 만에 미주에서 탄생한 가장 위대한 레시피'라고 불렸지만 그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멕시코 티후아나(Tijuana)와 미국 샌디에이고를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육로 국경선인 산 이시드로 입국지(San Ysidro Port of Entry)에서의 이른 금요일이었다. 일부 멕시코인은 일주일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일부 미국인은 주말을 일찍 시작했다. 나는 시저 샐러드를 발명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러 티후아나로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중 하나가 멕시코에서 발명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중 하나인 시저 샐러드는 멕시코에서 발명되었다. 사진: Lindsay Lauckner Gundlock/Alamy

여권 도장을 받고 국경을 넘은 후, 나는 아베니다 레볼루시온(Avenida Revolución)으로 가는 길에 할인 약국들과 판초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쳤다. 국경에서 도보로 25분 거리에 있는 시저스 레스타우란테 바(Caesar's Restaurante-Bar)는 1927년부터 티후아나의 번화가에 위치해 있다. 건물 앞에는 야자나무 두어 그루가 '시저스'(Caesar's)라고 적힌 붉은 글자를 살짝 가로막고 있고, 파티오 밖에는 '전설의 시저 샐러드의 고향'이라는 글귀와 함께 창립자 체사레(Cesare, '시저'[Caesar]) 카디니(Cardini)의 거대한 흑백 초상화가 걸려 있다.

1910년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후 카디니는 새크라멘토와 나중에 샌디에이고에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러나 금주법을 피해 1920년대 국경을 넘어 티후아나로 이주한 뒤 1927년 현재 위치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카디니의 딸 로사(Rosa)는 2003년 사망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유명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1924년 7월 4일에 그의 이름을 딴 요리를 발명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레스토랑은 미국 독립 기념일에 매우 활발하게 영업을 하여 재료가 부족했다. 즉흥적으로 카디니는 로메인 상추 잎, 날달걀 노른자, 파마산 치즈 및 기타 남은 음식을 사용하여 즉석에서 요리를 선보였다.

티후아나에 있는 시저스 레스타우란테 바(Caesar's Restaurante-Bar)는 전설적인 샐러드의 본고장이다. 사진: Sandy Huffaker/Corbis via Getty Images

나는 시저스에서 샐러드를 먹기 위해 국경을 넘은 최초의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1920년대 내내 미국 영화배우 무리가 금주법으로 금지된 술을 마시기 위해 티후아나로 몰려들었고 곧 할리우드 엘리트들 사이에서 시저의 이름을 딴 샐러드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클락 게이블(Clark Gable)과 장 할로(Jean Harlow)는 시저의 아삭한 양상추와 잘 차려진 요리를 맛보기 위해 티후아나로 여행했다. 그리고 저명한 미국 셰프 쥴리아 차일드(Julia Child)는 그녀의 저서 '쥴리아 차일드의 부엌으로부터'(From Julia Child's Kitchen)에서 1920년대 캘리포니아 집에서 부모와 함께 시저스로 모험을 떠나 카디니가 테이블에서 자신의 창작물을 준비하는 것을 지켜본 것을 그녀의 가장 이른 레스토랑 기억 중 하나로 설명했다.

차일드는 "전국 곳곳에서 온 샐러드의 느낌이었습니다"라고 썼다. "유럽에서 성공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온 샐러드의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샐러드는 곧 멕시코와 골든 스테이트(Golden State, 캘리포니아 주 - 역자 주)에서 전 세계로 퍼졌다. 1940년대 고메 매거진(Gourmet Magazine)은 이 요리를 '현재의 미식 하이라이트'라고 불렀다. 그리고 1953년에는 파리 국제 에피큐어 협회(International Society of Epicures)에서 '50년 만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레시피'로 선정되기도 했다.

카디니는 티후아나에서 짐을 싸고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1948년 가족의 유명한 샐러드드레싱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오늘날에도 그것은 여전히 시저 카디니 드레싱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그 브랜드는 현재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요리에 영감을 준 레스토랑과 그 뿌리는 티후아나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여러 면에서 시저의 최근 역사는 티후아나의 역사를 반영한다. 한때 틴셀타운(Tinseltown, 할리우드 - 역자 주)의 스타와 갱단의 화려한 성지였던 이 도시는 최근 문화 부흥을 경험하기 전에 수십 년에 걸친 범죄와 폭력의 물결에 휘말렸다. 2009년, 더 이상 카디니 가문이 소유하지 않고 지저분한 술집으로 악화된 시저스는 문을 닫았다. 그러나 2010년에 플라센시아스(Plascencias)라는 지역 가문이 시저스의 문을 완전히 닫은 후 다시 문을 열었다.

현재 그의 가족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티후아나의 스타 셰프 하비에르 플라센시아(Javier Plascencia)는 "[시저스는] 도시의 아이콘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사 중 하나입니다.”

하비에르 플라센시아(Javier Plascencia)는 "시저스는 도시의 아이콘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진: LLindsay Lauckner Gundlock/Alamy

오늘날 시저스는 흑백 타일과 반짝이는 마호가니 바가 있는 오래된 유럽 느낌을 가지고 있다. 서버의 빳빳한 한 흰색 셔츠가 검은 양복 조끼와 넥타이 아래에서 튀어나와 있다. 티후아나의 역사적인 사진이 벽을 장식하고, 무거운 빔이 짙은 목재 천장을 가로지르며, 조명이 어두워 레스토랑에 친밀한 분위기를 준다.

엔살라다 시저스(Ensalada Caesar's, 시저 샐러드 - 역자 주)를 주문하는 것은 정교한 쇼를 보기 위해 재생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 시저 샐러드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다. 안무의 일부이다. 그것은 크림 드레싱과 로메인 상추 사이의 슬로 댄스이다.

시저 샐러드는 단순한 레시피가 아니라 안무의 일부이다.

웨이터가 샐러드 카트로 몸을 돌릴 때 공연이 시작된다. 임명된 엔살라데로(ensaladero, 샐러드를 만드는 사람 - 역자 주) 서버는 작은 숟가락의 다진 마늘을 큰 나무 그릇에 담고 머스터드, 통통한 멸치 필레 및 우스터셔(Worcestershire) 소스 몇 방울을 추가한다. 서버는 계란을 깨고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춘 두 개의 숟가락으로 껍질을 비우고 노른자를 그릇에 던진다. 그런 다음 웨이터는 라임 주스를 짜서 나무집게로 그릇에 있는 모든 것을 열심히 저어준다. 휘젓는 동안 엔살라데로는 올리브 오일과 잘게 간 파마산 치즈를 뿌린다.

드레싱이 각 내용물의 합보다 더 많이 섞이면, 서버는 신선한 로메인 잎을 접시에 담고 부드럽게 모든 것을 함께 살살 섞는다. 그런 다음 웨이터는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간 검은 후추, 플레인 크로스티니(crostini, '작은 토스트' - 역자 주) 한 개, 훨씬 더 많은 파마산 치즈로 잎을 덮는다.

큐브 모양의 크루톤(crouton, 보통 수프나 샐러드에 들어가는 바삭하게 튀긴 작은 빵 조각 - 역자 주), 베이컨 조각 또는 레몬주스는 들어가지 않는다.

시저스 레스타우란테 바에서는 상징적인 샐러드가 테이블 옆에서 준비된다. 사진: L Sasha Gora

샐러드의 이름과 로사 카디니(Rosa Cardini)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 유명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누가 실제로 이 요리를 발명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녀의 책 '멕시코의 필수 요리들'(The Essential Cuisines of Mexico)에서 멕시코 식품 권위자인 다이애나 케네디(Diana Kennedy)는 샐러드가 실제로 체사레의 동생 알렉스(Alex)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제안한다. 케네디에 따르면 알렉스는 10세 때 이탈리아에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으며 1차 세계대전에서 에이스 조종사가 된 후 1926년 티후아나로 이사해 형과 함께 레스토랑을 열었다. 케네디는 "처음에는 비행사의 샐러드(Aviator’s Salad)로 알려졌으나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시저로 불리게 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알렉스-시저 카디니 샐러드(Alex-Caesar Cardini Salad)라고 불려져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부를 것입니다."라고 썼다.

티후아나 레스토랑에서 알렉스와 체사레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폴 마지오라(Paul Maggiora)도 자신이 이 샐러드를 처음으로 섞었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은 체사레의 젊은 직원인 리비오 산티니(Livio Santini)에 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온 산티니는 1924년 티후아나로 이사해 카디니의 요리 직업을 얻었고 그의 어머니가 해주곤 했던 요리를 바탕으로 샐러드를 만들었다고 한다.

오늘날 체사레의 웹사이트에서도 이렇게 묻는다. "체사레 카디니 혹은 리비오 산티니가 샐러드를 만들었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중 하나가 탄생했을 때 우리는 솔직히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히 카디니 씨와 산티니 씨 모두를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진정한 기원이 무엇이든, 샐러드가 북쪽 미국으로 이동하면서 핵심 재료 중 하나가 바뀌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요리법에는 내 테이블의 드레싱에  엔살라데로가 섞은 신선한 라임 주스가 아닌 레몬주스를 필요로 한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도 이 샐러드를 레몬을 곁들인 요리로 정의한다.

시저의 샐러드 드레싱은 레몬 주스가 아닌 라임 주스로 만들어진다. 사진: Lindsay Lauckner Gundlock/Alamy

제임스 비어드 상(James Beard Award, 미국의 요리사 및 관련 업계에 수여되는 상 - 역자 주)을 수상한 음식 작가이자 요리책 작가인 캐롤린 카레뇨(Carolynn Carreño)는 티후아나에서 태어났으며 이 레몬-라임 믹스를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스페인어로 '라임'을 뜻하는 단어가 '리몬'(limón)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레몬'과 아주 비슷하게 들립니다."라고 그녀는 썼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레몬'에 대한 스페인어 단어도 '리몬'이다. 카레뇨의 아버지는 1950년대에 우연히 시저스에서 일하면서 샐러드를 테이블 옆에 섞었는데 그녀가 지적했듯이 그녀가 어렸을 때 먹었던 원래 시저는 항상 작고 녹색의 멕시코 라임으로 만들어졌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사 중 하나입니다.

티후아나의 누군가가 최초의 시저 샐러드를 섞은 지 9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요리는 시저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이자 현지인들에게 자부심의 원천이다. 지난 7년 동안 티후아나 출신의 훌리오 알바레즈(Julio Alvarez)는 시저스에서 바텐더로 일해 왔다. “여기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요.”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샐러드는] 매우 중요합니다. 티후아나 사람들을 위한 기념비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시저, 알렉스, 리비오 또는 폴이 이 요리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실제 이야기를 결코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탈리아 이민자가 로마의 이름을 딴 로메인 상추로 티후아나에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샐러드 중 하나를 발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혼합 샐러드로 다문화 음식이며, 국경을 초월할 가치가 있는 요리이다.

반응형